Sabah에는 왜 Hakka가 많을까, 코타키나발루에서 자주 듣는 객가 이야기

Sabah주 코타키나발루에 살다 보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을 자주 만납니다.

2020년 인구총조사 기준 Sabah 시민권자 가운데 중국계는 9.5%였습니다. Kota Kinabalu로 범위를 좁히면 중국계 비율은 18.7%로 올라갑니다. 시민권자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에 가까운 비율입니다.

그런데 Sabah의 중국계 사회에는 말레이시아의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Hakka, 한국에서는 객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Sabah 정부도 중국계를 Sabah에서 가장 큰 비원주민 집단으로 소개하면서, 이 가운데 다수가 Hakka 계통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Tenom과 Kudat 같은 지역에서는 Hakka 공동체와 농업의 관계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Hakka, 객가는 무슨 뜻일까

Hakka는 한자로 客家라고 씁니다.

客은 손님, 家는 집이나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학술자료에서는 Hakka를 문자 그대로 guest people, 즉 손님으로 온 사람들 정도의 의미로 설명합니다. 여러 지역으로 이동해 정착해온 Hakka의 역사와도 연결되는 이름입니다. 

중국계라고 해서 모두 같은 언어나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Hakka 외에도 Hokkien, Cantonese, Teochew, Hainanese 등 여러 언어·지역적 배경을 가진 집단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사회를 Chinese라고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Sabah에서는 그중 Hakka의 비중이 특히 큰 편입니다.

Sabah Pensiangan의 중국계 상점가

Sabah에 Hakka가 많아진 것은 19세기 후반부터입니다

Sabah의 Hakka 역사를 보면 지금의 인구 구성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당시 Sabah는 North Borneo라고 불렸고, British North Borneo Chartered Company가 지역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개발에 필요한 노동력과 정착민이 필요했던 North Borneo Company는 19세기 후반부터 중국인 이주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1881년부터 1941년 사이에는 Walter Medhurst를 통한 모집, Basel Mission을 통한 이주, Free Passage라고 불린 무료 항해 지원 등 여러 방식으로 중국계 이주가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Free Passage 제도에서는 이주자에게 무료 항해뿐 아니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조건은 Hakka 가족들의 Sabah 정착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관련 연구에서는 이 시기의 이민정책과 Basel Mission 네트워크가 Sabah에 Hakka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시작점 가운데 하나가 Kudat이었습니다

Hakka와 Sabah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Kudat이 자주 등장합니다.

Kudat은 사바주가 위치한 Borneo의 최북단 지역입니다. 

Kudat은 North Borneo 초기 행정 중심지였고, 중국계 이주민들이 처음 정착한 주요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Kudat 지방정부 자료에 따르면 1882년 당시 중국인 노동자와 이주민을 North Borneo로 데려오기 위한 모집이 이루어졌고, 상당수가 Kudat과 Sandakan 등에 정착했습니다. 1885년 Kudat 인구 937명 가운데 중국인이 348명이었고, 그중 222명은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도 Kudat의 중국계 주민 가운데 Hakka 계통이 많은 것으로 지방정부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Kudat에 Hakka Historical Gallery Exhibition Centre도 문을 열었습니다. Sabah 주정부는 이 시설을 소개하면서 Sabah Hakka 공동체의 조상이 1880년대 Kudat에 도착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Sabah Hakka와 Basel Church

Sabah Hakka 역사를 보다 보면 Basel Church가 계속 등장합니다.

Basel Mission은 원래 중국 Guangdong 지역의 Hakka 공동체를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네트워크를 통해 Hakka Christian 이주민들이 North Borneo로 들어왔습니다.

현재의 Basel Christian Church of Malaysia, BCCM은 자신들의 역사를 1882년 12월 Kudat에 도착한 초기 Hakka Christian 이주민들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후 Hakka 정착민들이 서해안과 철도 건설 지역 등으로 이동하면서 교회와 학교도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교육과도 연결됩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Basel Mission은 1886년 Kudat에 Hakka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고, 당시 Hakka어가 교육 언어로 사용됐습니다. 1912년에는 Sandakan에 Sung Siew School도 설립했습니다. 

그래서 Sabah Hakka 사회를 설명할 때 기독교 역사를 빼놓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Hakka는 모두 Christian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안 됩니다.

Hakka 내부에도 종교와 생활방식은 다양합니다.

다만 Sabah에서는 초기 Hakka 정착 과정에 Basel Mission과 기독교 공동체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Sabah Kudat의 Basel Christian Church Malaysia


Hakka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Sabah의 중국계를 Hakka 하나로만 설명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Hokkien, Cantonese, Teochew, Hainanese 등 여러 중국계 공동체가 함께 살아왔습니다. Sabah의 중국계 집단은 언어를 기준으로도 여러 그룹으로 나뉩니다. 

Kudat만 봐도 재미있는 예가 있습니다.

Hakka 정착 역사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Hokkien 공동체가 세운 중국 사원도 남아 있습니다.

즉 Sabah Chinese = Hakka가 아니라,

Sabah 중국계 가운데 Hakka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Tenom에서도 Hakka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Sabah 정부는 Hakka 주민들이 많이 정착한 지역으로 Kudat과 함께 Tenom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농업에 종사한 Hakka 공동체가 많았던 지역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듯이 Tenom은 지금도 농업과 커피로 유명합니다.

지역 음식에서도 중국계, 특히 Hakka 문화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Tenom에서는 Hakka 스타일의 spring roll과 meatball, 돼지고기와 taro를 함께 찌는 요리 등이 지역 음식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음식 하나를 가지고 Tenom 전체 음식문화를 Hakka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Tenom에는 Murut을 비롯한 다른 원주민 공동체도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Sabah의 음식이 한 민족의 음식처럼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 이유도 이런 역사와 관계가 있습니다.

Sabah의 Tenom 시내와 주변 전경

Malaysian Chinese인가 Chinese Malaysian인가

말레이시아에 있다 보면 영어 표현도 조금 재미있습니다.

영어 문법만 놓고 보면 말레이시아 국적의 중국계 사람을 Chinese Malaysian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말레이시아에서는 Malaysian Chinese라는 표현을 훨씬 흔하게 접합니다.

현지 매체에서는 이런 어순이 말레이어와 Mandarin의 영향을 받은 Malaysian English의 특징일 가능성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말레이어에서는 수식어가 명사 뒤에 오는 경우가 많고, Mandarin에서도 말레이시아 중국계를 马来西亚华人, 즉 Malaysia + Chinese person 순서로 표현합니다. 이런 구조가 영어 사용에도 영향을 주면서 Malaysian Chinese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는 설명입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이 Malaysian Chinese를 줄여서 ‘말차’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말차는 말레이시아의 공식 민족 명칭도 아니고 영어 표현도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편하게 줄여 부르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글에서는 Malaysian Chinese, 또는 한국어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정도로 쓰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중국어권에서는 Ma-Hua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Ma-Hua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중국어로는 马华라고 씁니다.

학술자료를 보면 Ma-Hua라는 용어는 적어도 1930년대 말부터 사용됐고, 원래 Malaya의 화교를 가리키는 표현에서 출발해 이후 Malaysian Chinese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Ma-Hua literature, 즉 말레이시아 중국어 문학이라는 표현도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로 비슷해 보여도 구분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 Malaysian Chinese: 말레이시아에서 흔히 사용하는 영어 표현
  • Chinese Malaysian: 영어 문법상 말레이시아 국적의 중국계라는 의미가 더 직접적인 표현
  • 马来西亚华人: 중국어로 말레이시아 중국계
  • 马华 / Ma-Hua: 중국어권에서 사용하는 약칭
  • 말차: 일부 한국인들이 Malaysian Chinese를 줄여 부르는 표현

처음 들으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출처가 전부 다릅니다.


Sabah의 Hakka는 이주민 역사에서 시작해 현지 사회의 일부가 됐습니다

19세기 후반 North Borneo에 들어온 Hakka 가운데 상당수는 농업 노동자와 정착민이었습니다.

이후 교회와 학교를 만들고, 농업뿐 아니라 상업과 전문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습니다.

1921년 인구조사에서는 이미 Hakka가 Sabah 중국계의 가장 큰 언어집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지금 Sabah에서 Hakka라는 말을 자주 듣는 이유는 단순히 중국계 주민이 많아서만은 아닙니다.

Kudat에서 시작된 초기 이주, British North Borneo Company의 정착정책, Basel Mission, 농업과 철도 건설, 교회와 학교 같은 역사가 백 년 넘게 이어져 현재의 Sabah 중국계 사회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Sabah의 중국계를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Hakka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됩니다.

사진 출처

사진은 블로그 표시 크기만 조정했으며 내용 편집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료 확인

제도와 통계는 변경될 수 있어 2026년 10월 6일 기준 공식 자료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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