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 원주민은 누구일까? 카다잔두순·바자우·무룻·룽구스 이야기

말레이시아에 처음 오면 사람들을 대충 몇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정도만 떠올립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정도로 생각했으나 Sabah에서 몇 년을 살다 보니 오히려 더 헷갈립니다.

오래 살면 외모만 보고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실제로는 반대였습니다.

몇 년을 살아도 외모만 보고 이 사람이 Kadazan인지, Dusun인지, Bajau인지, Murut인지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여러 민족 이름을 더 알게 될수록 함부로 짐작하기 어려워집니다.

공식 통계에서도 민족은 조사원이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자가 스스로 밝힌 민족을 기준으로 집계합니다.

지난 글에서 말레이시아의 인구 구성과 Bumiputera를 정리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살고 있는 Sabah로 범위를 좁혀보려고 합니다.

Sabah에는 Kadazan-Dusun, Bajau, Murut, Rungus뿐 아니라 우리가 한국에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원주민 집단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Sabah에는 원주민이 얼마나 살고 있을까

Sabah 정부 공식 소개 페이지에서는 Sabah에 33개의 indigenous group, 50개가 넘는 언어와 80개의 ethnic dialect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Sabah Cultural Board 자료를 보면 조금 다릅니다.

Sabah Native Affairs 관련 분류를 기준으로 35개 ethnic group과 217개 sub-ethnic group을 문화 관련 이해관계자로 다루고 있습니다. 

Kadazan Dusun Cultural Association, 즉 KDCA는 현재 자신들이 48개의 indigenous ethnic community를 대표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33개, 35개, 48개.

처음 보면 도대체 어느 숫자가 맞는 건지 헷갈립니다.

하지만 누가 틀렸다기보다 어디까지를 하나의 민족으로 묶고, 어디부터를 별도의 하위 집단으로 볼 것인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낫습니다.

Sabah의 민족 구성이 그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숫자는 Kadazan/Dusun과 Bajau가 가장 큽니다

Sabah의 세부 민족 구성을 가장 자세히 볼 수 있는 공식 자료 중 하나가 2020년 인구총조사입니다.

당시 Sabah 총인구 약 342만 명 가운데 주요 집단은 다음과 같이 집계됐습니다.

  • Kadazan/Dusun: 660,777명, 19.3%
  • Bajau: 565,499명, 16.5%
  • Murut: 106,468명, 3.1%
  • Orang Sungai/Sungoi: 100,934명, 3.0%
  • Suluk: 72,734명, 2.1%
  • Brunei Malay: 70,560명, 2.1%
  • Rungus: 54,958명, 1.6%

이 외에도 Bisaya, Iranun, Kedayan, Ida'an, Lundayeh 등 많은 집단이 따로 집계됩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건 숫자보다 이름입니다.

Sabah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 이름들이 실제 사람들의 자기소개나 지역 이름, 축제, 음식, 언어와 계속 연결되어 나옵니다.


Kadazan과 Dusun은 왜 같이 적을까

공식 통계에서는 보통 Kadazan/Dusun으로 묶어서 표기합니다.

Sabah 정부 역시 Kadazan-Dusun을 Kadazan과 Dusun 두 집단을 통합해 분류하는 명칭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Kadazan과 Dusun이 처음부터 완전히 같은 이름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역과 공동체에 따라 사용하는 정체성이 다르고, Kadazandusun이라는 통합 명칭이 자리 잡은 과정도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Kadazan, Dusun, Kadazandusun이라는 표현을 모두 접하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이들 공동체는 벼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Sabah 정부는 논과 산지 벼 재배를 전통적인 생업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고 있으며, Sumazau를 대표적인 전통춤으로 설명합니다. 

이 문화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Kaamatan입니다.

Kaamatan 기간 KDCA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Kadazan-Dusun 주민들
Kaamatan 기간 KDCA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Kadazan-Dusun 주민들


Kaamatan이 큰 축제인 이유

Sabah에 살다 보면 5월이 되면서 Kaamatan이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보게 됩니다.

5월 30일과 31일은 Sabah의 공식 공휴일이기도 합니다.

Kaamatan이라는 말은 Kadazandusun어에서 수확을 뜻하는 tomot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벼 수확과 연결된 감사 축제입니다. 전통적으로 Huminodun 이야기와 벼의 영혼에 대한 믿음도 Kaamatan 문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굳이 비교하자면 추석에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현재 Kaamatan은 Kadazandusun만의 행사라고 보기에도 어려워졌습니다.

Sabah 주정부 역시 Kadazandusun, Murut, Rungus 등 여러 공동체와 Sabah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면서 느끼기에도 Sabah에서 Kaamatan은 단순한 지역축제라기보다, 5월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꽤 큰 행사에 가깝습니다.

각종 이벤트도 많이 열리고 Kadaazandusun 거주지에서 열리는 큰 행사에는 무슬림 행사와는 달리 술과 돼지고기가 제공되기도 합니다. 


Bajau 하면 바다만 떠올리면 조금 틀립니다

Bajau는 Sabah에서 두 번째로 큰 원주민 집단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Bajau를 설명할 때 자주 생기는 오해가 있습니다.

Bajau = 바다에서 사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Sabah 정부 자료를 보면 Bajau는 서해안과 동해안 모두에 넓게 분포합니다.

서해안에는 Putatan, Tuaran, Kota Belud, Kota Marudu, Papar 등이 있고, 동해안에는 Sandakan, Lahad Datu, Kunak, Semporna, Tawau 등이 있습니다. 

지역이 달라지면 생활문화도 꽤 달라집니다.

특히 Kota Belud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 Bajau는 승마문화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Cowboys of the East라는 표현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Sabah Kota Belud Tamu의 Bajau 전통 장식마

반대로 Semporna를 비롯한 동해안 Bajau 공동체는 바다와 연결된 생활문화가 강합니다.

말레이시아 사바대학교의 Bajau 연구에서도 Sabah Bajau를 크게 West Coast Bajau와 East Coast Bajau로 구분하며, 거주 지역과 생활 방식에 따라 언어와 관습에도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Bajau라는 이름 하나 안에도 여러 모습이 있는 셈입니다.

특히 Bajau는 Muslim 비중이 높은 편이라, 저는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해주기 전까지는 외모만 보고 Malay인지 Bajau인지 거의 구분하지 못합니다.


Murut은 Sabah 내륙과 많이 연결됩니다

Murut 역시 Sabah의 대표적인 원주민 집단입니다.

Sabah 정부 자료에서는 Murut 안에도 29개의 sub-ethnic group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전통적으로 북부 Borneo 내륙 지역에 거주하며 산지 벼와 카사바를 재배하고, 사냥과 어업을 해왔습니다. 강 주변의 공동 longhouse 생활도 Murut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Murut을 설명하는 자료에서는 과거의 headhunting 이야기도 자주 등장합니다.

실제로 Sabah 정부 역시 일부 Murut 사회에서 과거 headhunting이 종교적·의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Murut 문화를 이것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있습니다.

현재 Tenom에는 Sabah Cultural Board가 운영하는 Murut Cultural Centre가 있습니다.

전통 Murut 건축 양식을 반영한 대규모 목조 건물로 만들어져 있고, Murut 문화와 예술을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한 전시, 세미나, 교육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Sabah 원주민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실제로 한 번 가볼 만한 곳입니다.

Sabah Mari-Mari Cultural Village의 Murut 문화 전시

Rungus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Rungus는 숫자로 보면 Kadazan/Dusun이나 Bajau보다 작지만 Sabah 북부에서는 존재감이 큰 집단입니다.

2020년 인구총조사에서는 약 5만5천 명이 Rungus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Kudat, Pitas, Kota Marudu 등 Sabah 북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Kudat 지방정부도 Rungus를 Kudat의 원주민 집단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지역 역사와 Rungus 공동체의 관계를 상당히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Rungus 문화에서 많이 알려진 것 중 하나가 전통 longhouse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Kota Kinabalu에 있는 Sabah Museum 본관 건물 자체가 전통 Rungus longhouse의 형태에서 디자인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Sabah Cultural Board도 Rungus를 Sabah Bumiputera의 하나인 Momogun Rungus로 따로 문화 자료를 만들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네 집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Kadazan/Dusun, Bajau, Murut, Rungus는 Sabah 원주민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이 네 이름만 알고 Sabah를 이해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2020년 인구총조사만 봐도:

  • Orang Sungai
  • Bisaya
  • Iranun
  • Kedayan
  • Ida'an
  • Lundayeh
  • Suluk
  • Brunei Malay

등이 따로 집계됩니다.

Sabah 정부 공식 소개에는 이 외에도 Lotud, Bonggi, Tindal, Tobilung, Tidong 등 많은 이름이 등장하며 어떤 집단 안에는 다시 여러 하위집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Sabah 민족에 대해 알아볼 수록 오히려 처음보다 간단하게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몇 년을 살아도 외모만 보고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Sabah에서 몇 년을 살아도 아직 사람 외모만 보고 어느 민족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현지 문화를 잘 모르고 더 오래 살면 구분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Kadazan, Dusun, Bajau, Murut, Rungus처럼 이름을 더 많이 알게 되고, 지역과 문화 차이를 조금씩 알게 되니 오히려 함부로 판단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공식 인구통계조차 민족을 외모로 분류하지 않고 본인이 밝힌 정체성을 기준으로 집계합니다.

지역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같은 민족 안에서도 하위 집단이 있고, 서로 결혼하고 도시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현지에 저보다 훨씬 오래 체류하신 분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누구도 외모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손님들 타깃을 잡을때 각각 문화가 다른 원주민들의 거주지와 음식 문화 등을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진 출처

사진은 블로그 표시 크기만 조정했으며 내용 편집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료 확인

제도와 통계는 변경될 수 있어 2026년 10월 6일 기준 공식 자료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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