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헤이즈, 매년 반복되는 연기

올해 코타키나발루 하늘은 유난히 뿌옇습니다.

며칠 그러다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맑은 날이 거의 없는 정도입니다. 멀리 보이던 산이나 섬이 흐릿해지고, 심한 날에는 탄 냄새까지 납니다.

처음에는 날씨가 흐린 줄 알았으나, 이게 말로만 듣던 헤이즈라는 걸 코타키나발루에 온 첫해에 알게 되었습니다. 

코타키나발루에 거주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이 사실 한국의 미세먼지가 힘들어서였는데, 헤이즈가 없는 말레이시아의 공기는 최고로 쾌적하지만 올해의 헤이즈는 정말 힘듭니다.

오히려 한국의 공기가 더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코타키나발루의 헤이즈

올해만 유난히 심하다고 느낀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예민해서 그렇게 느낀 건가 싶어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2026년 8월 ASEAN 기상센터 자료를 보면 Kalimantan, Sumatra뿐 아니라 Sabah와 Sarawak의 hotspot 수도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8월 30일 위성사진에는 Kalimantan에서 발생한 중·고농도 연무가 브루나이와 사라왁을 지나 사바 남부까지 퍼진 모습도 잡혔습니다. 

9월 초 코타키나발루의 공기 상태도 실제로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9월 1일 Kota Kinabalu의 API는 177까지 올라갔고, 9월 3일에도 156을 기록했습니다. 말레이시아 기준으로 101~200은 ‘나쁨’입니다. 

수치는 이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갔습니다.

9월 21일에는 Kota Kinabalu가 104를 기록했고, 9월 25일에는 63으로 다시 보통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하루하루 API 숫자는 계속 달라집니다.

그런데 API 숫자보다 여기서 생활하는 입장에서는 평소에 잘 보이던 산이 안 보이고, 바다가 뿌옇고, 공기에서 탄 냄새가 납니다.

이런 게 정말 힘듭니다.

    헤이즈가 짙은 이나남

헤이즈는 그냥 안개가 아닙니다

헤이즈는 산불이나 이탄지 화재, 각종 연소 과정에서 나온 아주 작은 입자와 오염물질이 공기 중에 퍼지면서 시야가 흐려지는 현상입니다.

특히 산불 연기에는 PM2.5 같은 미세입자가 많이 포함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산불에서 발생한 입자 물질의 상당 부분이 PM2.5이고, 이런 미세입자는 폐 깊숙이 들어가거나 혈류까지 침투해 호흡기와 심혈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하늘이 좀 뿌옇네” 정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사용하는 API도 이런 대기오염 수준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든 지수입니다.

0~50은 좋음, 51~100은 보통, 101~200은 나쁨, 201~300은 매우 나쁨, 300을 넘으면 위험 단계입니다.

뿌옇게 보이는 키나발루산 정상


올해 이번 연기는 어디서 온 걸까

헤이즈가 심해지면 말레이시아에서는 늘 인도네시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올해도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9월 2일 위성관측에서는 Kalimantan에서 780개, Sumatra에서 142개의 active hotspot이 확인됐습니다. 같은 날 Sabah에서는 hotspot이 검출되지 않았고, 코타키나발루와 페남팡·파파르 등에서도 대형 화재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사바 환경부 역시 당시 악화된 공기질을 국경을 넘어온 연무와 연결했습니다. 

얼마 전인 8월 30일에도 남부 ASEAN 지역에서는 1,211개의 hotspot이 확인됐는데 그중 1,180개가 Kalimantan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전체는 13개였고 Sabah에서는 2개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헤이즈를 인도네시아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8월 29일 위성에서는 Tuaran과 Kota Belud에서도 hotspot이 확인됐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 역시 국내 농경지, 이탄지, 플랜테이션과 쓰레기 매립지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노천소각을 계속 단속하고 있습니다.

결국 올해 사바가 겪은 헤이즈에는 국경을 넘어온 연기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지만, 말레이시아 쪽에서 발생하는 화재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API 200이 넘으면 학교도 문을 닫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입장에서는 이 부분도 신경이 쓰입니다.

말레이시아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API가 100을 넘으면 학교의 야외활동이 중단되고, 200을 넘으면 해당 지역 학교가 문을 닫습니다. 

아직 우리 아이 학교가 휴교한 적은 없습니다.

아침마다 밖을 확인하고 API 수치를 확인합니다. 

야외 체육 활동이 있는 날은 부모의 입장에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카페 야외석도 자연스럽게 비게 됩니다

우리 카페에도 야외 테이블이 있습니다.

올해 헤이즈가 심한 날은 확실히 밖에 앉는 손님이 적습니다.

전체 손님이 줄었는지는 정확한 매출 데이터를 따로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지만 바깥 자리만 앉던 단골 손님들이 실내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확실히 많이 보입니다.

제 생각에도 탄 냄새가 나고 하늘까지 뿌연 날에 굳이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건 카페뿐 아니라 관광사업에도 영향을 주는 건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코타키나발루에 오는 관광객 중에는 바다와 선셋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헤이즈가 심한 날에는 평소 보이던 풍경 자체가 사라져버립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만족보다는 실망하며 돌아가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게 올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헤이즈에서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부분은 사실 공기 자체만은 아닙니다.

이 문제가 너무 오래됐다는 겁니다.

ASEAN은 1997~1998년 대형 산불과 헤이즈 사태를 겪은 뒤 2002년 쿠알라룸푸르에서 ASEAN Agreement on Transboundary Haze Pollution을 체결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같은 해 비준했고 협정은 2003년부터 발효됐습니다.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에도 같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9월에는 말레이시아 총리까지 ASEAN이 기존 국경 간 헤이즈 대응방식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에는 말레이시아 천연자원·환경지속가능성부가 싱가포르의 제도를 참고해 국경 간 헤이즈를 별도로 다루는 법률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는 부분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002년에 국가 간 협정을 만들 정도로 오래된 문제인데 2026년에도 다시 법을 검토하고, 대응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산불을 말레이시아 정부가 마음대로 끌 수는 없습니다.

바람의 방향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20년 넘게 반복된 문제라면 매년 건기가 올 때마다 “이번에도 헤이즈가 왔다”는 말로 끝낼 일인지 의문이 듭니다.

서부 보르네오의 헤이즈



사진 출처

사진은 블로그 표시 크기만 조정했으며 내용 편집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료 확인

제도와 통계는 변경될 수 있어 2026년 10월 6일 기준 공식 자료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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