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는 끝났지만 진짜 일은 이제부터였습니다.
공사만 끝나면 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법인을 인수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자동으로 제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주 변경과 회사 관련 서류 정리부터 시작해, 회사 명의 은행 계좌 권한 변경, POS 시스템 명의 변경, 거래처 정보 수정, 각종 허가와 신고까지 하나씩 다시 정리해야 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런 업무 대부분을 회사 비서(Secretary)와 함께 진행하게 되는데, 저는 말레이어는 물론 행정 절차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회사 비서가 뭔가를 요청해도 저는 몇번을 다시 물어봐야 했고, 어디가서 이렇게 하면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도 용어들이 너무 어려워서 항상 주눅들고 번역기를 돌려서 이해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작은 일 하나를 처리하는 데도 어디에 가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부터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했던 일들이 이곳에서는 하루종일 시간을 써야 겨우 하나 끝나는 경우도 태반이었습니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일처리 하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하루하루가 식은땀나는 일의 연속이었고 점점 이 곳에서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심적으로 지쳐가던 시기 였습니다.
바로 그 때 전 사장님이 제게 한 사람을 소개 해 주었습니다.
"저희 직원이있던 친구인데, 이 친구만큼은 꼭 같이 데려가세요"
그 친구의 이름은 Johnny였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습니다.
업종도 바뀌는데다가 전 사장님의 직원이 과연 저와 함께 일을 잘 해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서로 만나서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좋은 인상을 받게 되고, 저는 월급도 기존보다 올려주고 함께 일을 해보자고 많이 도와달라는 말로 채용을 결정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선택이 말레이시아에서 첫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잘 한 일중 하나였다는 것을요.
Johnny는 제가 막히는 일이 생기기전에 항상 먼저 움직이고 해결해 주었습니다.
성격도 급해서 한국인이지만 굼뜬 저와는 아주 궁합도 잘 맞았습니다.
한 번 문제가 되어서 진행이 막혀버렸던 은행계좌 명의 변경도 Johnny가 은행 본사 서비스팀에 연락해주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고, POS기 업체와 화상통화를 통해 작동하지 않던 POS기도 살려내었습니다.
여러가지 카페에 관련된 장비와 비품을 사러 코타키나발루 교외 까지 우리는 함께 운전을 하며 돌아다녔고, 미리 가격이 가장 저렴한 업체를 찾아서 전화로 조율후 최종 결정만 할 수 있게 편의를 항상 봐주었습니다.
구인 광고를 올리고 지원자들을 면접보고 채용하는 업무를 대부분 Johnny가 도와주어서 언어에서 오는 불편함을 모두 상쇄해 주었습니다.
Johnny는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제가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 첫번째 사업파트너였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나 음료보다는 음식이 더 어렵고 신경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카페라고 하면 커피와 음료가 메인이 되고, 간단한 디저트나 케익류와 빵류가 보조가 되는 곳이 많습니다.
반면 제가 경험한 코타키나발루의 카페들은 커피와 음료뿐 아니라 다양한 식사메뉴를 함께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낯설었습니다.
심지어 한국인 사장인 한국식 카페조차도 식사메뉴를 거의 대부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는 식사메뉴가 없는 카페를 찾기 어려울 정도 였습니다.
결국 저도 식사 메뉴를 구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식당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저에게 음식메뉴를 만들고 레시피를 다듬고 퀄리티를 맞춘다는것은 상상도 해 본적 없는 큰 난관이었습니다.
다행히 외식을 좋아하고 즐기던 우리 가족의 특성으로 기본적인 음식은 어느정도 할 줄 알았으나, 취미로 음식을 요리하는것과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너무나 다른 일이었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셰프 지인에게 여러가지 요리방식에 대해 시간날때 마다 물어보고 배우고 했는데 그 지인은 항상 이렇게 저에게 묻곤 했습니다.
"카페를 한다면서 왜 자꾸 음식만 물어봐요?"
맞습니다. 한국인의 정서상 카페는 카페고 식당은 식당입니다.
이해를 못하는것도 당연했습니다. 저조차도 이해가 안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여러 메뉴를 준비하면서 마음먹은 한가지는 음식을 현지화 시키지 말고 오리지날 한국맛을 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이 한국에서 넘어오는 비싼 재료를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3,000원이면 살 수 있는 1리터 진간장을 코타키나발루에서는 한국돈으로 12,000원에 구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의 재료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할 수 없는 한국 재료는 현지에서 가장 비슷한 재료를 찾고 연구하고 수정하며, 가장 한국인이 먹었을때 한국맛이 나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커피머신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면서 카페를 만들었는데, 실제로는 주방에서 기름 연기를 마시면서 웍을 돌리며 음식 메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참 아이러니 했습니다.
오픈을 일주일 앞두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모든 준비가 조금씩 마무리되어 가던 시점이었습니다.
Johnny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예전에 지원했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예상보다 빨리 핵심 부서에 결원이 생겨 연수를 바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주차장에서 카페로 출근하려던 차에서 장문의 왓츠앱 메세지를 보고 한동안 차에 앉아서 시동을 켜지도 못하고 망연자실해 멍하니 앉아 있을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오픈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가장 필요한 사람이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카페 직원으로 일하는 것보다 공무원이 되는 것이 Johnny의 인생에는 훨씬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부담주고 싶지 않아서 웃으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만 했습니다.
"오픈 전까지만 같이 준비해 줄 수 있어?"
Johnny는 흔쾌히 약속을 받아 들였습니다.
Johnny는 마지막까지 약속을 지켰습니다.
Johnny는 떠나기 전까지 오픈 준비를 함께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없었기에 준비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지만 주방 세팅부터 운영 준비, 직원 교육, 마지막 점검까지 꼼꼼하게 하나하나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오픈 후에도 일주일 동안 함께 근무하며 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연수를 떠난 이후에도 인연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몇 달에 한 번씩 휴가 기간에 카페를 찾아와 커피를 마시고, 서로 안부를 묻고, 예전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지금도 Johnny는 Willow Coffee의 왓츠앱 직원용 단체 톡방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조언이 필요할때 저에게 뿐만 아니라 현재의 직원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처음 창업을 준비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변수를 버텨낼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시행 착오도 많이 발생 할 것이고 그에따라 그만큼 예상치 못한 비용도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사업을 하면서 크게 느낀 중요함은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상권에서 훌륭한 인테리어에 비싼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돈의 가치를 넘어서 사람 한명이 주는 큰 힘을 말레이시아 사업을 시작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해외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분이 있다면 한 가지는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은 상권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그 친구를 만난 것이 제게는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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